그리스 시대 노예 개념에서 중요한 점은 몸과 그 생산물의 분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라는 말이 순수한 몸의 사용만을 의미하는 지점—즉, “노동자는 그가 신체로서 존재하는 것과 상품, 비물질적 재화로서 존재하는 것에 각각 대응하는 두 개의 법적 영역 사이에 분할된다”는 말—은 뭔가 이해가 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다.
일단 로마 시대와 기독교의 활발한 시기의 가장 큰 지점은, ‘아버지 중심의 부계중심주의’에서 ‘아들 중심의 부계중심주의’로의 이행이라고 푸코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형상’과 나머지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즉 가족 안에 노예가 위치하게 되는데, 인간의 형상을 갖고 있으나 도구인 존재로 서술된다. 여기서 말하는 도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산 수단으로서의 도구와는 다르다. 그것은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사용’을 위한 것이다. “노예의 몸의 사용은 실(만돌린이나 밴조를 연주하는 채)이거나, 북레코더의 실(실패, 실감개)처럼,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침대나 옷처럼 사용을 위한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노예의 몸은 '사용되기 위한 것'으로, ‘가정(oikos)’에 소속된 존재다. 이러한 관계성은 다시 **프리맨(freeman)**에서 몸과 정신의 관계와도 대입된다. 즉, 몸은 정신 혹은 로고스, 이성에 의해 '사용되는' 관계에 있다. 여기서 정신,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로마 시민)의 위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자유로운 사람이라 부르는 이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타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람(ho autou heneka kai me allou on)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혜(wisdom)를 유일한 자유로운 학문이라 말한다.”
이러한 맥락은 푸코가 말하는 주체의 해석학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즉, “나를 알라”라는 초기 의미에는 “이성의 자유인이 되어라”라는 함의가 담겨 있으며, 이는 스파르타인이 노예가 많아 “자신을 신경 쓸 시간”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아테네인의 대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나를 알라’는 것”은 “자신을 돌봄”이라는 의미와 연결되며, 이러한 ‘자신을 돌봄’이란 곧 자유인으로서 ‘나를 위해 나를 돌보는’ 수행을 의미한다.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는가, 즉,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의 의미로 전환된 과정은,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에서 자세히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