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의 흔들림
얽힌 세 낱말, 갈라지는 두 몸
발라즈의 초기 이론에서 세 낱말은 서로 얽혀 있다. 그런데 문장을 들여다보면 두 낱말은 이미 다른 것을 그리고 있다. 하나는 형태들을 감싸는 공기이고, 하나는 몸의 윤곽 너머로 번지는 빛이다.
두 갈래는 백 년을 흐른다
이 분리는 영화이론의 역사가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두 갈래가 그 비대칭을 따라 갈라져 나갔다. 왼쪽 물줄기는 소마이니를 거쳐 벤야민의 매질로 가고, 오른쪽 물줄기는 들뢰즈의 클로즈업을 거쳐 마수미의 정동으로 간다.
동그라미나 이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자리의 주석이 열린다. 손가락으로 볼 때는 눌러도 된다.
양 끝은 잠잠하고 가운데가 떨린다
매질로 굳는 것도 하나의 해소이고 정동으로 흩어지는 것도 하나의 해소다. 두 끝에서 파동은 잦아든다. 어느 해소에도 이르지 않은 채 가운데서 진폭을 유지하는 국면, 흔들림은 거기에 있다.
이 논증을 세우는 데 필요한 문헌
첫 마디가 분리의 문헌적 근거를 세우지 못하면 나머지 셋이 허공에 뜬다. 둘째와 셋째는 서로 순서를 바꿔도 되지만 넷째는 반드시 마지막이다. 남의 글이 이미 한 일을 확인하는 마디이기 때문이다.
세운다
문헌적 분리인가 개념적 분리인가. 발라즈가 아우라라는 낱말을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가 글 전체의 무게를 정한다.
따라간다
소마이니가 어디까지 갔고 어디서 멈췄는지가 이 글의 자리를 정한다. 2006과 2016 사이에 빈칸이 하나 남는다.
따라간다
들뢰즈가 발라즈를 어떻게 인용하는지가 계보 주장의 사실적 근거다. 이 대조를 건너뛰면 계보가 추정으로 남는다.
확인한다
테제의 참신함은 남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대어 있다. 그 사실을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하는 마디다.
철학자는 어느 극에 서는가
관건은 각자에게 정확한 일을 시키는 데 있다. 배경으로만 두어야 할 인물을 전면에 세우면 글이 무거워지고, 이 글 밖의 인물을 끌어들이면 논지가 다른 글과 겹친다.
동그라미나 이름에 마우스를 올리면 각자에게 맡긴 일이 열린다. 손가락으로 볼 때는 눌러도 된다.
어느 작업에 두 독해가 다 걸리는가
역사적 닻은 사료로만 짧게 쓰고, 이중 독해의 본 무대는 동시대 실험적 무빙 이미지로 가져온다. 조건은 하나다. 매질 독해와 정동 독해가 모두 걸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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