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발라즈 · 분위기와 아우라

분위기의 흔들림

01

얽힌 세 낱말, 갈라지는 두 몸

발라즈의 초기 이론에서 세 낱말은 서로 얽혀 있다. 그런데 문장을 들여다보면 두 낱말은 이미 다른 것을 그리고 있다. 하나는 형태들을 감싸는 공기이고, 하나는 몸의 윤곽 너머로 번지는 빛이다.

Atmosphäre Aura Stimmung 아직 나뉘지 않은 채 분리 매질 (Medium) 형태들을 감싸는 공기와 향기 세계 쪽으로 퍼진다 아우라 윤곽 너머로 번지는 관상 형상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림 1. 왼쪽은 세 낱말이 포개진 상태다. 오른쪽 둘은 그 안에서 이미 다르게 그려지고 있던 두 모양이다. 매질은 중심 없이 퍼지고 아우라는 중심에서 뻗는다. 두 모양의 차이가 분리의 근거이며, 발라즈 원전 30쪽과 65쪽에 각각 근거를 두고 있다.
02

두 갈래는 백 년을 흐른다

이 분리는 영화이론의 역사가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두 갈래가 그 비대칭을 따라 갈라져 나갔다. 왼쪽 물줄기는 소마이니를 거쳐 벤야민의 매질로 가고, 오른쪽 물줄기는 들뢰즈의 클로즈업을 거쳐 마수미의 정동으로 간다.

1923 1924 1983 2006 2011 2016 무르나우 《Phantom》 리뷰에서 Stimmung론이 처음 세워진다 사료. 소마이니도 같은 영화로 논문을 연다 발라즈. 30쪽의 공기와 향기는 매질 쪽을, 65쪽의 가시적 아우라는 형상의 발산 쪽을 가리킨다. 쪽수는 소마이니 경유라 원문 대조 전까지 잠정이다. 벨라 발라즈 『가시적 인간』과 『영화의 정신』 들뢰즈. 클로즈업된 얼굴이 좌표에서 떨어져 순수한 질이 된다는 통찰을 한 번 비틀어 계승한다. Cinéma 1, 감정-이미지 장. 들뢰즈 『시네마 1』 얼굴이 이미 클로즈업이라는 전도 소마이니 2006. 짐멜과 관상학 전통, 가이거의 감정이입으로 발라즈를 당대의 사상 지형에 놓는다. 분리도 정동 계보도 없다는 것을 정독으로 확인했다. 소마이니 2006 미분화의 확인. 분리는 시도되지 않았다 마수미. 같은 231쪽에서 아우라를 비국소적 연결의 직접적인 지각적 느낌으로 재정의한다. Semblance and Event, MIT 2011. 마수미 231쪽 아우라를 강도로 다시 정의한다 소마이니 2016. 매질극의 이론적 내용을 여기서 가져온다. 아우라의 쇠퇴 대 발라즈의 재발견이라는 대조는 이미 되어 있으므로 되풀이하지 않는다. 소마이니 2016 벤야민의 Medium으로 간다 합류. 두 극이 서로를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논증의 발판이다. 분리로 끝내면 이 대목을 설명할 수 없다. 두 길이 다시 스치는 자리 발라즈30쪽의 공기와 향기는 매질 쪽을, 65쪽의 가시적 아우라는 형상의 발산 쪽을 가리킨다. 쪽수는 소마이니 경유라 원문 대조 전까지 잠정이다. 들뢰즈클로즈업된 얼굴이 좌표에서 떨어져 순수한 질이 된다는 통찰을 한 번 비틀어 계승한다. Cinéma 1, 감정-이미지 장. 소마이니 2006짐멜과 관상학 전통, 가이거의 감정이입으로 발라즈를 당대의 사상 지형에 놓는다. 분리도 정동 계보도 없다는 것을 정독으로 확인했다. 마수미같은 231쪽에서 아우라를 비국소적 연결의 직접적인 지각적 느낌으로 재정의한다. Semblance and Event, MIT 2011. 소마이니 2016매질극의 이론적 내용을 여기서 가져온다. 아우라의 쇠퇴 대 발라즈의 재발견이라는 대조는 이미 되어 있으므로 되풀이하지 않는다. 합류두 극이 서로를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논증의 발판이다. 분리로 끝내면 이 대목을 설명할 수 없다.

동그라미나 이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자리의 주석이 열린다. 손가락으로 볼 때는 눌러도 된다.

그림 2. 세로가 연대다. 정동의 계보 끝에서 벤야민의 아우라가 다시 불려 나오고, 그 순간 두 물줄기가 서로를 스친다. 보라 파선이 그 지점이며 흔들림 논증의 발판이 된다.
03

양 끝은 잠잠하고 가운데가 떨린다

매질로 굳는 것도 하나의 해소이고 정동으로 흩어지는 것도 하나의 해소다. 두 끝에서 파동은 잦아든다. 어느 해소에도 이르지 않은 채 가운데서 진폭을 유지하는 국면, 흔들림은 거기에 있다.

분위기 매질극 읽히고 이름 붙어 지각의 조건으로 안정된다 정동극 포획을 빠져나가 의미에 앞선 강도로 흩어진다 포획 이탈 어느 해소에도 이르지 않은 긴장 준안정성. 시몽동은 각주에만 둔다
그림 3. 진폭이 곧 흔들림의 세기다. 양 끝에서 파동이 잦아드는 것은 그곳이 해소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울기의 조건은 의미화의 사건에 걸린다. 클로즈업이냐 롱숏이냐와 무관하므로 같은 화면 안에서도 진폭이 오르내린다.
이중 독해 시험 같은 장면을 두 언어로 각각 끝까지 읽고, 남는 나머지를 본다 매질 독해 정동 독해 겹치지 않는 두 초승달이 나머지다 매질 독해는 화면이 몸을 치는 순간을 놓치고, 정동 독해는 그 강도가 여전히 하나의 세계에서 온다는 사실을 놓친다. 두 나머지가 서로를 가리킬 때 흔들림은 논증의 결과로 도출된다. 주장으로 내걸 일이 없어진다.
그림 4. 두 원이 겹치는 자리는 두 독해가 함께 설명하는 부분이다. 겹치지 않고 남는 두 초승달이 각 독해의 나머지이며, 그 나머지가 서로 반대쪽을 가리킨다.
자의성 시비에 대비해 둘 것. 나머지는 반드시 텍스트와 화면에서 지시 가능해야 한다. 지시할 수 없는 나머지는 인상에 머문다.
04

이 논증을 세우는 데 필요한 문헌

첫 마디가 분리의 문헌적 근거를 세우지 못하면 나머지 셋이 허공에 뜬다. 둘째와 셋째는 서로 순서를 바꿔도 되지만 넷째는 반드시 마지막이다. 남의 글이 이미 한 일을 확인하는 마디이기 때문이다.

M 01
분리의 근거를
세운다

문헌적 분리인가 개념적 분리인가. 발라즈가 아우라라는 낱말을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가 글 전체의 무게를 정한다.

Balázs, Early Film TheoryVisible Man and The Spirit of Film · trans. Livingstone, ed. Carter · Berghahn 2010
Balázs, Der sichtbare MenschDer Geist des Films · Suhrkamp 2001 · 용어의 독일어 원문 대조
Carter, “Introduction”in Balázs, Early Film Theory · Berghahn 2010
M 02
매질의 길을
따라간다

소마이니가 어디까지 갔고 어디서 멈췄는지가 이 글의 자리를 정한다. 2006과 2016 사이에 빈칸이 하나 남는다.

Somaini, “Il volto delle cose”Physiognomie, Stimmung e Atmosphäre nella teoria del cinema di Béla Balázs · Rivista di Estetica n.s. 32 (2/2006), 141-160
Somaini, “Walter Benjamin’s Media Theory”The Medium and the Apparat · Grey Room, 2016
Walton, “Air, Atmosphere, Environment”Film Mood, Folk Horror and The VVitch · Screening the Past 43, 2018
Sinnerbrink, “Stimmung”exploring the aesthetics of mood · Screen 53(2), 2012
Pollmann, Cinematic Vitalism2018 · Yacavone, Film Worlds와 함께 주변 지형
M 03
정동의 길을
따라간다

들뢰즈가 발라즈를 어떻게 인용하는지가 계보 주장의 사실적 근거다. 이 대조를 건너뛰면 계보가 추정으로 남는다.

Deleuze, Cinéma 1The Movement-Image · 감정-이미지 장
Massumi, Semblance and EventMIT Press, 2011, p. 231
Massumi, “Dim, massive and important”2021 · 준안정성의 어휘가 여기 있다
Åkervall, Rhizomes 16들뢰즈와 발라즈의 클로즈업 논의의 선례
Slaby, “Atmospheres”Schmitz, Massumi and beyond · 2019
M 04
겹침과 위험을
확인한다

테제의 참신함은 남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대어 있다. 그 사실을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하는 마디다.

Bruno, Atlas of Emotionp. 48 · Surface의 주석과 함께
Martin, “The Film Philosophy of Béla Balázs”in Herzogenrath ed., Film as Philosophy, 2017
Fata Morgana 56Atmosfera · Pellegrini
05

철학자는 어느 극에 서는가

관건은 각자에게 정확한 일을 시키는 데 있다. 배경으로만 두어야 할 인물을 전면에 세우면 글이 무거워지고, 이 글 밖의 인물을 끌어들이면 논지가 다른 글과 겹친다.

매질극 정동극 발라즈. 두 낱말이 이미 다른 곳을 가리킨다는 사실 자체가 논증의 출발이다. 원전 두 권이 첫 마디의 전부다. 발라즈 분기점 소마이니. 이어받는 자리이자 갈라서는 자리. 2006과 2016 사이에 이 글이 선다. 소마이니 이어받고 갈라서는 자리 벤야민. 아우라와 Medium. 소마이니 2016을 경유해 들어온다. 벤야민 아우라와 Medium 들뢰즈. 얼굴이 이미 클로즈업이라는 전도, 그리고 임의공간. 들뢰즈 얼굴의 전도, 임의공간 마수미. 도착점이자 합류점. 231쪽의 재정의, 재포화 어휘, 그리고 준안정성을 소화한 2021년 글. 마수미 도착점이자 합류점 축 밖 시몽동. 준안정성 어휘의 출처. 전면에 세우면 발라즈와 들뢰즈와 마수미 위에 이론이 한 층 더 쌓여 무거워진다. 시몽동 각주에만 짐멜과 가이거. 소마이니가 발라즈를 놓은 당대의 사상 지형. 라파터와 괴테와 클라게스와 카스너가 함께 온다. 인용은 얇게. 짐멜 · 가이거 배경 뵈메. 분위기를 사물의 엑스터시로, 곧 사물이 제 바깥으로 뻗어 나오는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 규정은 분위기를 다시 사물에 붙들어 매므로 매질과 정동 사이라는 이 축과 어긋난다. 연출된 효과와 과정적 제작을 가르는 다른 자리에서 다뤄야 한다. 뵈메 이 글 밖 말라부. 파괴적 형성력은 형태가 부서지는 자리에서 새 형태가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붙들림과 빠져나감이라는 이 글의 축과 겹쳐 보이지만 묻는 것이 다르다. 하나는 형태의 운명을 묻고 하나는 의미화의 문턱을 묻는다. 말라부 이 글 밖 발라즈두 낱말이 이미 다른 곳을 가리킨다는 사실 자체가 논증의 출발이다. 원전 두 권이 첫 마디의 전부다. 소마이니이어받는 자리이자 갈라서는 자리. 2006과 2016 사이에 이 글이 선다. 벤야민아우라와 Medium. 소마이니 2016을 경유해 들어온다. 들뢰즈얼굴이 이미 클로즈업이라는 전도, 그리고 임의공간. 마수미도착점이자 합류점. 231쪽의 재정의, 재포화 어휘, 그리고 준안정성을 소화한 2021년 글. 시몽동준안정성 어휘의 출처. 전면에 세우면 발라즈와 들뢰즈와 마수미 위에 이론이 한 층 더 쌓여 무거워진다. 짐멜과 가이거소마이니가 발라즈를 놓은 당대의 사상 지형. 라파터와 괴테와 클라게스와 카스너가 함께 온다. 인용은 얇게. 뵈메분위기를 사물의 엑스터시로, 곧 사물이 제 바깥으로 뻗어 나오는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 규정은 분위기를 다시 사물에 붙들어 매므로 매질과 정동 사이라는 이 축과 어긋난다. 연출된 효과와 과정적 제작을 가르는 다른 자리에서 다뤄야 한다. 말라부파괴적 형성력은 형태가 부서지는 자리에서 새 형태가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붙들림과 빠져나감이라는 이 글의 축과 겹쳐 보이지만 묻는 것이 다르다. 하나는 형태의 운명을 묻고 하나는 의미화의 문턱을 묻는다.

동그라미나 이름에 마우스를 올리면 각자에게 맡긴 일이 열린다. 손가락으로 볼 때는 눌러도 된다.

그림 5. 가로는 매질과 정동 사이의 자리다. 아래 줄에 놓인 넷은 축 위에 서지 않는다. 시몽동은 각주로 내려가고, 짐멜과 가이거는 배경이며, 뵈메와 말라부는 다른 글의 몫이다.
06

어느 작업에 두 독해가 다 걸리는가

역사적 닻은 사료로만 짧게 쓰고, 이중 독해의 본 무대는 동시대 실험적 무빙 이미지로 가져온다. 조건은 하나다. 매질 독해와 정동 독해가 모두 걸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두 독해가 팽팽한 구역 어느 극으로 기우는가 새 독해의 여지가 크다 여지가 좁다 매질 쪽 정동 쪽 Ana Vaz 강도의 어휘가 이미 붙어 있고 땅과 역사를 함께 다룬다 Laida Lertxundi 빛과 공기가 한 층, 몸과 소리의 강도가 다른 층 Sky Hopinka 언어와 주권 논의가 두터워 논지가 끌려갈 위험 Rosa Barba 매질극이 선명한 대신 정동극이 약해진다 Ben Rivers · 아피찻퐁 분위기 논의가 이미 두껍다는, 검증하지 않은 인상
그림 6. 원의 크기는 후보로서 얼마나 유력한지를 나타낸다. 가로는 두 극 사이의 기울기, 세로는 새 독해가 들어설 여지다. 두 축 모두 조사에서 끌어낸 판단이다. 작품을 본 뒤의 판단은 아직 없다. 고르기 전에 두 독해가 실제로 팽팽한지, 각 독해의 나머지를 화면에서 지시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아 있다.
무르나우 《Phantom》1922
발라즈가 1923년 리뷰하며 Stimmung론을 처음 세운 자리. 사료의 자격은 발생에서 온다. 기존 분석이 두터워도 흔들리지 않는다
발생의 현장
발라즈 자신의 사례
사막의 발자국 등. 원전 안에서 바로 읽을 수 있어 첫 마디와 함께 처리된다
원전 안에서
《칼리가리》
백 년간 읽힌 정전이라 새 독해의 공간이 좁다. 쓴다면 발라즈의 양식 구분 안에서 짧게만
신중
한 작가, 한 작품으로 좁힌다. 둘을 나란히 두면 이중 독해가 흐려지고 각 독해의 나머지도 뭉개진다.

발라즈 원전의 30쪽과 65쪽은 소마이니의 인용을 경유한 것이라, 원문 대조 전까지는 잠정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그림 6의 작가 배치는 작품을 본 판단이 아니라 프로그램 노트와 소개 글에서 끌어낸 추정이다. 자리와 크기는 논증의 조건을 보이기 위한 것이지 작가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